대한민국 민법은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혼 청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민법 제840조 제2호).
대법원은 민법 제840조 제2호 ‘악의의 유기’를 “배우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서로 동거, 부양, 협조하여야 할 부부로서의 의무를 포기하고 다른 일방을 버린 경우”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악의의 유기로 인정한 사례
- 다른 사람과 동거하며 부첩 관계를 유지한 경우
- 정신질환이 있는 아내를 두고 출가하여 승려가 된 경우
- 자녀 양육을 소홀히 하고 상습적으로 가출한 경우
악의의 유기로 인정하지 않은 사례
- 배우자의 폭행이나 학대를 피해 가출한 경우
- 심한 가정불화로 인해 일시적으로 집을 나와 별거한 경우
- 상대방의 동의 하에 별거한 경우
- 경제적 어려움이나 질병 치료, 회사의 인사 발령 등 부득이한 사유로 별거하게 된 경우
대한민국 민법의 ‘악의의 유기’는 위와 같이 기본적으로 별거 상황을 전제로 합니다.
'건설적 유기(constructive desertion)’는 배우자 중 한쪽이 혼인 공동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행위나 위법한 행위를 지속함으로써 다른 배우자로 하여금 집을 나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람을 유기자(deserter)로 간주하는(legal fiction) 영미법(Common Law) 체계의 개념입니다.
대표적으로 1955년 영국 추밀원(Privy Council)의 Lang v. Lang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Lang v. Lang 사건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나와 계속 같이 살려면 너희 부모님과 연락을 끊어야 한다”는 식의 불합리한 요구를 하였습니다. 아내는 이를 거부했고 집을 나왔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집을 떠났으니 아내가 자신을 유기(desertion)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내가 집을 떠난 것이 남편을 유기한 것인지, 아니면 남편이 부당한 요구로 아내를 유기한 것인지가 쟁점이었습니다.
영국 추밀원은 ‘남편이 아내를 떠나도록 강요했으므로 남편이 아내를 유기한 것(constructive desertion)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건설적 유기 개념은 유책주의(Fault divorce)를 유지하고 있는 영미법계의 국가나 주들 예를들면 미국 조지아(Georgia) 주, 버지니아(Virginia) 주, 뉴저지(New Jersey) 주, 미시시피(Mississippi) 주 등에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여해법률사무소는 인천가정법원 항소부로부터 건설적 유기 개념을 이용하여 ‘악의의 유기’를 인정받아 1심 전부 패소를 뒤집고 2심 전부 승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캄보디아 국적의 여성은 남편의 동의를 받고 아이와 함께 친정 부모님을 방문하였으며, 남편의 동의를 받아 캄보디아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내는 등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면서도 형편이 어려워 생활비를 못 보내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캄보디아 아내는 남편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 일하여 아이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동시에 대한민국 법원에 아내가 캄보디아로 가서 돌아오지 않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며 소송을 제기하였고 1심 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하였습니다.
여해법률사무소는 이 사건의 항소심을 담당하게 되었고 건설적 유기 개념을 응용하여 겉으로는 아내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진실은 남편이 아내를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한 것이며 그 수단으로 법원의 재판 제도를 이용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아내)의 소재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제1심 법원에 피고의 소재불명을 주장하여 공시송달로 이혼 판결을 받고, 사건본인의 양육비와 생활비 지급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가 아닌 원고(남편)가 악의로 피고를 유기하여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명시하며, 혼인 파탄의 주된 책임이 남편에게 있다고 판결하였습니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 남편의 이혼 청구는 기각되고 아내의 반소 청구가 인용되어 두 사람은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법원은 자녀의 친권자와 양육자로 아내를 지정했으며, 남편에게는 위자료 1,000만 원, 과거 양육비 1,500만 원, 그리고 자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 장래 양육비로 매월 80만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국제결혼 부부 중 배우자가 본국에 잠시 방문한 것을 계기로 몰래 이혼 소송을 하여 비자를 만료시켜 귀국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 판결은 국제결혼 가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유기 행위에 대한 법원의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향후 다문화가정의 권익 보호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