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도입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사안을 일반화한 가상의 상황이며, 특정 사건이나 의뢰인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어머니의 인지 저하가 심해지면서, 가족은 성년후견을 신청해 큰딸이 후견인이 되었습니다. 얼마 뒤 큰딸은 “혼자 모시기 어렵다”며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입원시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지방에 사는 아들이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어머니는 집에 계시고 싶어 하신다. 후견인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시설에 보낼 수는 없다.” 여기에 어머니의 무릎 수술 동의 문제까지 겹치자, 남매의 갈등은 결국 다시 법원으로 향했습니다. 후견인이 된 사람은 본인의 치료와 거주를 정말 혼자 결정할 수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후견인이 되면 본인에 관한 모든 것을 대신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민법은 후견인의 권한을 재산관리와 신상보호로 나누고, 특히 본인의 몸과 삶의 터전에 관한 결정에는 본인의 자기결정 존중과 가정법원의 허가라는 두 겹의 안전장치를 두고 있습니다. 성년후견 신상보호의 경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정작 보호받아야 할 본인의 뜻을 지키고 가족 사이의 불필요한 분쟁을 줄이는 출발점입니다.
신상보호란 무엇인가 — 재산관리와 다른 영역
성년후견인의 사무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예금·부동산 같은 재산관리이고, 다른 하나는 치료·요양·거주처럼 본인의 몸과 생활에 관한 신상보호입니다. 두 영역은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재산은 본인을 대신해 관리하면 되지만, 신상은 본인의 인격과 자기결정권에 직접 닿아 있어 후견인이 함부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법은 후견인이 처음부터 신상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갖는다고 정하지 않습니다. 가정법원이 성년후견을 시작하면서 후견인이 신상에 관하여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를 따로 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민법 제938조 제3항). 즉 어떤 후견인은 신상 전반을, 어떤 후견인은 특정 사항만 결정하도록 권한이 설계됩니다. 이 범위가 나중에 본인에게 적절하지 않게 되면 법원이 이를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제938조 제4항).
첫 번째 원칙 — 결정의 주인은 여전히 본인이다
신상보호의 대전제는 “본인이 할 수 있으면 본인이 한다”입니다. 민법은 “피성년후견인은 자신의 신상에 관하여 그의 상태가 허락하는 범위에서 단독으로 결정한다“고 정합니다(민법 제947조의2 제1항). 후견이 개시되었다고 해서 본인의 자기결정권이 통째로 후견인에게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본인의 뜻이 우선입니다.
이 원칙은 후견인이 사무를 처리하는 방식 전체를 관통합니다. 성년후견인은 재산관리든 신상보호든 여러 사정을 고려해 본인의 복리에 부합하는 방법으로 사무를 처리해야 하고, 본인의 복리에 반하지 않는 한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합니다(민법 제947조). 대법원도 후견 사건에서, 성년후견이든 한정후견이든 본인의 의사를 고려하여 후견적 입장에서 본인에게 어느 쪽 보호가 적절한지를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대법원 2021. 6. 10.자 2020스596 결정). 후견의 중심에는 언제나 후견인이나 가족의 편의가 아니라 본인의 이익과 의사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원칙 — 중대한 신상결정에는 법원 허가가 필요하다
본인이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사항이라면 후견인이 개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본인의 자유나 신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은, 후견인 혼자의 판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민법은 다음과 같은 중대한 신상 관련 행위에 대해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민법 제947조의2).
| 행위 유형 | 허가가 필요한 이유 | 근거 |
|---|---|---|
| 본인을 격리하는 경우 | 치료 등을 목적으로 정신병원이나 그 밖의 장소에 격리하려면 사전에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함(신체의 자유 제한) | 민법 제947조의2 제2항 |
| 중대한 의료행위에 대한 동의 | 본인이 동의할 수 없을 때 후견인이 대신 동의할 수 있으나, 그 의료행위로 사망하거나 상당한 장애를 입을 위험이 있으면 법원 허가가 필요(긴급한 경우 사후 허가) | 민법 제947조의2 제3항·제4항 |
| 본인이 사는 집(거주 부동산)의 처분 | 본인이 거주하는 건물·대지를 매도·임대·전세·저당 설정하거나 임대차를 해지하는 등의 행위는 생활 기반을 흔들 수 있어 법원 허가가 필요 | 민법 제947조의2 제5항 |
※ 위 표는 이해를 돕기 위한 개괄이며, 어떤 행위가 ‘격리’나 ‘중대한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는 구체적 사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앞선 사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후견인인 큰딸이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격리’에 해당한다면, 후견인 혼자 결정할 수 없고 가정법원의 허가를 거쳐야 합니다. 반대로 어머니가 스스로 입원을 원하고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상태라면 격리로 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무릎 수술 동의 역시, 통상적인 치료라면 후견인이 동의할 수 있지만 사망이나 상당한 장애의 위험이 따르는 수준이라면 법원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같은 ‘치료’와 ‘거주’라도, 그것이 본인의 자유와 신체에 미치는 무게에 따라 넘어야 할 문턱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가족이 다툴 때 — 후견인이 정해진 뒤에도 길은 있다
“이미 다른 형제가 후견인인데, 그의 치료·거주 결정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후견인이 선임되었다고 해서 본인과 다른 가족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법은 몇 가지 통로를 열어 두고 있습니다.
첫째, 후견인이 그 임무에 적합하지 않은 사정이 있으면 후견인 변경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940조). 다만 단순한 의견 차이나 막연한 불신만으로는 부족하고, 본인의 복리를 해칠 구체적 위험이 드러나야 합니다. 둘째, 법원은 후견을 감독하기 위해 후견감독인을 둘 수 있고, 후견인과 본인의 이익이 충돌하는 사안에서는 후견인이 본인을 대리할 수 없어 별도의 조치가 필요합니다(민법 제949조의3, 제921조 준용). 셋째, 앞서 본 것처럼 후견인의 신상 결정 권한 범위 자체를 법원이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민법 제938조 제4항).
중요한 것은, 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누구의 말이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본인에게 이로운가’라는 점입니다. 가족이 서로를 이기려고 다투는 구도에서는 정작 본인의 뜻과 이익이 가려지기 쉽습니다. 법원이 보는 것은 승패가 아니라 본인의 복리이므로, 감정적 다툼보다 본인에게 실제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설득력 있게 정리하는 쪽이 결과에 가깝습니다.
허가 없이 결정하면 — 후견인이 지는 책임
신상보호의 경계를 가볍게 여기면 후견인 자신이 위험을 떠안게 됩니다. 법원 허가가 필요한 격리나 거주 부동산 처분을 허가 없이 진행하면 그 행위의 효력이 문제 될 수 있고, 후견인은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어 손해배상 책임이나 후견인 해임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가족이니까 알아서 하면 된다”는 생각이 뜻하지 않게 법적 책임으로 돌아오는 지점입니다.
신상보호가 특히 까다로운 이유는, 어떤 행위가 ‘격리’인지, 어떤 의료행위가 ‘중대한’ 것인지, 어디까지가 후견인의 권한 범위인지가 조문만으로는 명확히 갈리지 않고 개별 사정에 대한 정교한 판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결정들은 한번 이루어지면 본인의 삶 전체에 오래 영향을 미칩니다. 후견 실무의 경험이 있는 변호사의 사전 검토가 필요한 것은, 단순히 서류를 대신 써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지키면서 후견인도 책임에서 벗어나는 안전한 길을 함께 설계하기 위해서입니다.
핵심 요약 (Key Takeaways)
· 후견인의 사무는 재산관리와 신상보호로 나뉘며, 신상에 관한 결정 권한의 범위는 가정법원이 정합니다(민법 제938조 제3항).
· 본인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신상 문제는 본인이 단독으로 결정하며, 후견인은 본인의 복리에 반하지 않는 한 그 의사를 존중해야 합니다(제947조, 제947조의2 제1항).
· 격리, 사망·중대 장애 위험이 있는 의료행위, 거주 부동산 처분은 후견인 혼자 정할 수 없고 가정법원 허가가 필요합니다(제947조의2 제2항·제4항·제5항).
· 후견인의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면 후견인 변경·권한 범위 조정 등의 통로가 있으며, 법원의 기준은 언제나 본인의 복리입니다(제940조·제938조 제4항, 대법원 2020스596 결정).
자주 묻는 질문 (FAQ)
Q. 성년후견인이 되면 부모의 치료나 요양시설 입소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나요?
아닙니다. 본인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신상 문제는 본인이 단독으로 결정하며, 후견인은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합니다(민법 제947조, 제947조의2 제1항). 특히 본인을 격리하거나, 사망·중대한 장애의 위험이 있는 의료행위에 동의하거나, 본인이 사는 집을 처분하려면 후견인 혼자 정할 수 없고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제947조의2). 후견인의 신상 결정 권한 범위 자체도 법원이 정합니다(제938조 제3항).
Q. 부모를 요양병원이나 시설에 모시려면 반드시 법원 허가가 필요한가요?
그 입소가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격리’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치료 등을 목적으로 정신병원이나 그 밖의 장소에 격리하려는 경우에는 사전에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민법 제947조의2 제2항). 반대로 본인이 스스로 원하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입소라면 격리로 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가 격리에 해당하는지는 개별 사정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므로 변호사의 검토가 필요합니다.
Q. 다른 형제가 후견인인데, 부모의 치료·거주 결정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요?
후견인이 임무에 적합하지 않은 사정이 있으면 가정법원에 후견인 변경을 청구할 수 있고(민법 제940조), 후견인의 신상 결정 권한 범위를 조정해 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제938조 제4항). 다만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본인의 복리를 해칠 구체적 위험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법원은 누구의 편을 드는지가 아니라 본인에게 무엇이 이로운지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부모의 치료·거주 결정을 두고 가족 간 의견이 갈리시나요?
어떤 결정에 법원 허가가 필요한지, 후견인의 권한 범위를 어떻게 조정할지는 사안마다 쟁점이 다릅니다. 서울가정법원 성년후견인 실무 경험이 있는 변호사가 사정을 듣고 방향을 안내해 드립니다.
카카오톡으로 상담 문의하기성년후견을 처음 신청하는 단계라면 성년후견 신청 절차 — 후견 유형 선택부터 후견인 선임까지 글을, 후견인이 선임된 뒤의 재산 처분과 법원 허가는 성년후견인의 재산 처분과 법원 허가 글을, 가족이 후견인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경우는 누가 성년후견인이 되는가 글을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족법 전반은 가족법 안내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여해법률사무소 김평호 변호사 (Pyoung-ho Kim)
한국 변호사,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제43기 수료.
서울가정법원 성년후견인 선임 경력. 2021년 우수변호사상 수상.
2014년 이래 민사·형사·가사 등 전 분야 누적 500건 이상의 사건 담당.
본 글은 성년후견 제도에 관한 일반적인 법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특정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나 의견이 아닙니다. 후견 사건의 결과는 개별 사정과 법원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사안은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