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구성한 가상의 상황이며, 실제 사건이나 저희 사무소 수행 사건이 아닙니다.

혼인신고를 3주 앞둔 지현 씨는 미국 국적 약혼자로부터 영문 서류 한 묶음을 받았습니다. 약혼자의 미국 변호사가 만든 혼전계약서(prenuptial agreement)였고, 한국에서 이 혼전계약서 효력이 어디까지 인정되는지는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은 각자 재산을 따로 관리하자는 내용이었지만, 마지막 조항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혼할 경우 양 당사자는 상대방 명의 재산에 대하여 어떠한 청구도 하지 아니한다.”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한국에서 살 텐데, 이 조항이 한국 법원에서도 그대로 통할까?” — 국제결혼을 앞둔 분들이 가장 많이 품는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한국 법에서 혼전계약서 효력은 생각보다 좁고, 특히 ‘이혼 시 재산분할 포기’ 조항은 그대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핵심 요약

한국의 혼전계약은 민법 제829조의 부부재산약정입니다. 혼인 성립 전에 해야 하고, 혼인 중에는 정당한 사유와 법원 허가 없이 바꿀 수 없습니다.

외국에서 먼저 혼인했다면 그때 이미 혼인이 성립합니다. 한국 혼인신고 전이라도 ‘혼인 전’ 약정 시한은 지났을 수 있습니다.

제3자(채권자·승계인)에게 주장하려면 혼인 성립 때까지 등기를 해야 합니다(민법 제829조 제4항).

대법원은 혼인 해소 전에 재산분할청구권을 미리 포기하는 것은 성질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16. 1. 25.자 2015스451 결정).

국제결혼은 ‘혼인 중 재산관계'(국제사법 제65조)와 ‘이혼 시 재산분할'(제66조)의 준거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국에 사는 한국인 배우자가 있으면 이혼은 한국 법에 따릅니다.

그렇다고 혼전계약서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혼인 전 재산의 출처·귀속을 기록해 두는 자료로서의 가치는 남습니다.

한국에도 혼전계약이 있을까 — 민법 제829조 부부재산약정

한국 민법은 ‘혼전계약’이라는 용어 대신 부부재산약정이라는 제도를 둡니다. 부부가 혼인 성립 전에 자기들 재산관계를 따로 정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민법 제829조). 약정이 없으면 법이 정한 기본 원칙, 즉 각자 명의 재산은 각자의 특유재산으로 보는 부부별산제가 적용됩니다(민법 제830조).

다만 미국 등에서 흔히 보는 prenup과는 성격이 꽤 다릅니다.

구분 영미권 prenup(일반적 형태) 한국 부부재산약정(민법 제829조)
체결 시기 혼인 전·혼인 중(postnup) 모두 가능한 경우가 많음 혼인 성립 전에만
변경 합의로 수정하는 경우가 많음 혼인 중 변경 불가 —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법원 허가로만(제2항)
제3자 대항 주로 당사자 사이 계약 혼인 성립까지 등기해야 승계인·제3자에게 대항(제4항)
이혼 시 재산분할 핵심 목적인 경우가 많음 사전 포기는 허용되지 않음(대법원 2015스451)

‘혼인 전’은 언제까지일까 — 외국에서 먼저 혼인한 경우

한국에서 혼인하는 경우에는 혼인신고로 혼인이 성립합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그 나라 법이 정한 방식으로 먼저 혼인했다면 그때 혼인이 유효하게 성립하고, 나중에 하는 한국 혼인신고는 이미 성립한 혼인을 알리는 보고적 신고에 그칩니다(대법원 1994. 6. 28. 선고 94므413 판결 — 구 섭외사법 당시 판결이며, 현행 국제사법 제63조 제2항도 혼인의 방식을 혼인을 한 곳의 법 등에 따르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부는 한국에 혼인신고를 하기 전이라도 민법 제829조의 ‘혼인 성립 전’이라는 시한이 이미 지났을 수 있습니다.

혼전계약서 효력의 한계 — 이혼 시 재산분할 포기 조항

지현 씨가 걱정한 마지막 조항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대법원은 대법원 2016. 1. 25.자 2015스451 결정에서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청구권은 이혼이 성립한 때에 비로소 발생하고, 협의나 심판으로 구체적 내용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범위와 내용이 불명확·불확정하다. 따라서 구체화되지 않은 재산분할청구권을 혼인 해소 전에 미리 포기하는 것은 성질상 허용되지 않는다. (판결요지 취지)

위 결정은 나아가, 이혼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재산분할청구권을 포기한다는 서면을 쓴 경우에도, 공동재산의 규모와 각자의 기여도, 분할 방법까지 실제로 협의한 결과라는 사정이 없다면 쉽게 ‘재산분할에 관한 협의’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위 결정의 논리에 비추어 보면, 이혼을 앞둔 시점의 포기 서면도 이렇게 엄격하게 보는 만큼 혼인하기도 전에 쓴 포괄적 포기 조항이 한국 법원에서 그대로 존중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개별 조항이 어떻게 해석될지는 계약서 전체의 문언, 작성 경위, 혼인 기간 중 재산 형성 과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일률적으로 “무효”라고 단정할 문제도, “유효”라고 안심할 문제도 아닙니다.

국제결혼이라면 ‘어느 나라 법’인지가 먼저 정해진다

배우자 한 명이 외국인이면 한국 민법이 곧바로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국제사법은 두 가지 문제를 나누어 준거법을 정합니다.

문제 근거 부부가 법을 고를 수 있나
혼인 중 재산관계(부부재산제) 국제사법 제65조(선택이 없으면 제64조의 순서) 가능 — 일자와 서명(기명날인)이 있는 서면으로, 한쪽의 본국법·한쪽의 일상거소지법·부동산 소재지법 중에서
이혼과 재산분할 국제사법 제66조(제64조 준용) 자유로운 선택 불가 — 한쪽이 한국에 일상거소가 있는 한국인이면 한국 법

지현 씨처럼 한국인 배우자가 한국에 살며 혼인생활을 한다면, 계약서에 “미국 ○○주 법에 따른다”고 적어 두었더라도 이혼과 그에 따른 재산분할은 한국 법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한국 법으로 판단되는 순간, 앞서 본 사전 포기 금지 법리가 적용됩니다.

또 외국법에 따른 부부재산제는 한국에서 한 법률행위나 한국에 있는 재산에 관하여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외국법에 따라 체결한 부부재산계약이라도 한국에서 등기해야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습니다(국제사법 제65조 제3항·제4항). 국제결혼 재산분할의 일반적 기준은 국제이혼에서 재산분할이 이루어지는 방식에서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렇다면 혼전계약서는 쓸모가 없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재산분할을 ‘미리 포기’하는 효력은 인정되기 어렵더라도, 혼전계약서가 가지는 의미는 여전히 있습니다.

혼인 전 재산의 기록 — 결혼 전부터 갖고 있던 부동산·주식·해외 계좌, 부모에게 받은 재산이 무엇이었는지 혼인 시점에 확정해 두는 자료가 됩니다. 이런 재산이 재산분할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는 특유재산이 분할에 포함되는 기준에서 설명했습니다.

재산분할에서의 참작 가능성 — 사전 포기의 효력은 인정되기 어렵더라도, 약정의 내용과 작성 경위가 재산분할에서 고려되는 여러 사정 중 하나로 참작될 여지까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혼인 중 재산 관리 방식 — 누가 어떤 재산을 관리할지 정하는 것은 부부재산약정 본래의 영역입니다.

외국에서의 효력 — 배우자의 본국이나 해외 자산 소재지에서는 그 나라 법에 따라 계약서가 별도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조항이 한국에서 살아남고 어떤 조항이 그렇지 않은지, 그리고 한국 법과 상대 국가 법이 동시에 걸릴 때 문구를 어떻게 맞출지는 두 나라 제도를 함께 놓고 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혼인신고가 끝나면 약정을 새로 맺거나 고칠 수 없다는 점에서, 서명 전이 사실상 유일한 검토 시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한국에서도 혼전계약서 효력이 인정되나요?

제한된 형태로 인정됩니다. 민법 제829조의 부부재산약정으로서 혼인 성립 전에 체결해야 하고, 혼인 중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법원 허가를 받아야만 변경할 수 있으며, 제3자에게 주장하려면 혼인 성립까지 등기가 필요합니다.

Q2. 혼전계약서에 ‘이혼 시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는다’고 쓰면 효력이 있나요?

그대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대법원 2016. 1. 25.자 2015스451 결정은 혼인 해소 전에 재산분할청구권을 미리 포기하는 것은 성질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구체적 해석은 계약서 전체 내용과 작성 경위에 따라 달라집니다.

Q3. 외국에서 외국법에 따라 작성한 혼전계약서도 한국에서 쓸 수 있나요?

혼인 중 재산관계는 국제사법 제65조에 따라 부부가 서면으로 선택한 외국법이 적용될 수 있지만, 이혼과 재산분할은 제66조에 따르므로 한국에 사는 한국인 배우자가 있으면 한국 법이 적용됩니다. 또 외국법에 따른 부부재산계약을 한국에서 제3자에게 주장하려면 한국에서 등기해야 합니다.

Q4. 이미 혼인신고를 했는데 지금이라도 혼전계약서를 쓸 수 있나요?

민법 제829조의 부부재산약정은 혼인 성립 전에만 체결할 수 있고, 혼인 중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법원 허가를 받아야만 변경할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 먼저 혼인한 경우에는 그 나라에서 혼인이 성립한 때가 기준이 되므로, 한국 혼인신고 전이라도 이미 시한이 지났을 수 있습니다. 혼인 후 작성한 서면이 어떤 효력을 갖는지는 내용에 따라 별도로 따져 보아야 합니다.

혼인신고 전, 혼전계약서 초안을 받으셨나요?

같은 조항이라도 두 사람의 국적·거주지·재산 소재지에 따라 한국 법원에서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손에 있는 초안(영문 포함)을 보여 주시면, 한국 법 기준으로 어떤 부분이 문제될 수 있는지 서명 전에 함께 확인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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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6년 9월 기준 민법·국제사법과 대법원 결정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외국법의 내용과 효력은 해당 국가 법률전문가의 확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여해법률사무소 — 국제결혼·국제이혼 및 가사 사건.

김평호 변호사
김평호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 사법연수원 43기 · 2021 우수변호사상 · 2014년부터 전 분야 누적 500건 이상